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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충청도

서산 해미읍성을 가다

by 성실한 남자 2025.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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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해미읍성을 본 것 같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도 해미읍성이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해미읍성은 익숙한 단어였고 장소였다. 비록 가본 적은 없었지만.

이번 기회에 해미읍성을 다녀오게 되었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해미읍성은 편안하고 고즈넉한 평화로운 장소였다.

우리의 전통 가옥을 보는 것은 언제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일이다.

 

 

 

바다가 아름답다는 의미의 '해미(海美)'라는 지명은 조선시대부터 사용되었다. 1416년 태종이 서산 도비산에서 강무*를 하다가 해미에서 하루를 머물면서 주변지역을 둘러보게 됐는데,당시 해안지방에 출몰하는 왜구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에 적당한 장소라고 판단하여 덕산에 있던 충청병영을 이설하기 위한 대상지로 정해 1417년(태종17년)부터 1421년(세종3년)까지 축성을 완료하게 된다.

 

그 후 해미에 충청지역 육군의 최고 지휘기관인 충청병영이 위치하며 병마절도사가 배치되어 육군을 총 지휘하였고 1651년 청주로 충청병영을 이전하며 충청병마절도사의 병영성으로서의 역할이 끝나게 된다. 이후 충청도 5진영중 하나인 호서좌영이 들어서게 되고 영장(營張)으로 무장을 파견해 호서이성의좌영장과 해미현감을 겸직하게 하면서 읍성(邑城)*의 역할을 하게 된다.

 

- 출처 '해미읍성 홈페이지'

 

 

해미읍성과 천주교

천주교는 천주를 믿는 종교라는 뜻으로 가톨릭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약 200여년 전, 조선후기에 전래되어 초기에는 서학이라는 학문의 일종으로 연구되었으나 후에 종교화 되면서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었다.

1790년대 정조 때부터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병인양요(1866년 흥선대원군의 천주교도 학살, 탄압에 대항하여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와 1868년 오페르트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묘를 도굴한 사건 이후 더욱 극심해진다.

이때 해미진영의 겸영장은 내포지방 13개 군현의 군사권을 쥐고 있었으므로 해당 지역의 교도들을 모두 잡아들여 해미읍성에서 처형하였는데 그 수가 무려 1,000여명 이상이었다고 전한다.

 

- 출처 '해미읍성 홈페이지'

 

 

많은 아이들이 연을 날렸고, 많은 가족들이 편안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바쁜 삶 속에서 잠시 멈춤을 하고, 시간과 번민을 날려보내야 한다.

 

 

우리 일행은 해미읍성을 천천히 둘러보고 사진을 찍고, 여유를 즐긴다음 서산 간월암으로 향했다.

간월암에 대한 포스팅은 아래에 있다. 

 

 

https://truelife923.tistory.com/323

 

서산 간월암의 유래, 풍경, 맛집, 등대

간월도가 예전에는 피안도, 간월암은 피안사라고 불린 적이 있다고 한다. 간월암은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하는데 그 출처가 분명하지는 않다. 밀물이 들어오면 물 위에 떠 있는 연꽃과 같다 하여

truelife923.tistory.com

 

 

 

 

 

혼자서도 좋고, 커플이어도 좋고, 가족에게는 더욱 좋은 곳이다.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도 좋은 곳이고, 가족들이 함께 편안한 휴식을 하며 돈독함을 다질 수 있는 장소가 바로 해미읍성이다.

 

기회가 된다면, 아니 언젠가 기회를 만들어서 꼭 한 번 다녀오기를 추천한다.

그 이후로 해미읍성은 평화로운 장소로 당신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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